‘글자만 보면 질색’ 난독증 초등생 12만명… 손놓은 교육부

“빨대 을, 국자 윽….”

13일 서울 성북구 국민대 난독증읽기발달연구센터. 초등학교 1학년 박모(7)군이 그림 카드의 글자와 각 글자에 있는 ㄱ, ㄹ 받침을 소리 내 읽으면서 한글을 익히고 있었다.

글자를 읽거나 쓰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난독증 탓에 박군은 지난 2월 센터에 오기 전까지 한글을 전혀 몰랐다. 이후 4개월여간 기초 문해력 교육을 받으면서 달라졌다. 두 동생에게 유아용 도서를 읽어 줄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서울 성북구 국민대 난독증읽기발달연구센터에서 난독증이 있는 초등학교 1학년 박모군(오른쪽)이 그림 카드를 이용해 ㄱ 받침과 ㄹ 받침을 익히고 있다.

박군은 다행히 부모가 아들의 난독증을 일찍 발견해 극복하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전국에 12만여명으로 추정되는 ‘난독증(위험) 초등학생’ 중 상당수가 적절한 지도를 받지 못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습장애의 일종인 난독증은 성적뿐 아니라 정서적 발달과 교우 관계 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7일 교육부에 따르면 2014년 한국학습장애학회에 의뢰해 전국 154개 초등학교 857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전체 4.6%가 난독증이 있거나 난독증 위험이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 비율을 전국 초등학생 271만3797명(지난해 10월 기준)에 적용하면 난독증(위험) 초등학생이 12만4835명이나 된다는 얘기다. 중고생까지 포함하면 난독증 학생은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난독증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의 정보처리 능력 결함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난독증 학생은 대부분 학습화된 무기력 증상을 보인다. 난독증으로 시험에서 0점을 받는 일이 반복되면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생각에 학습 의욕과 자신감을 잃기 일쑤다. 또 난독증이 있으면 의사소통이 잘 안 돼 동급생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학교 부적응 사태까지 초래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난독증 증상을 보이는 사례가 많다.

국민대 난독증읽기발달연구센터가 지난 5월 경기도내 한 초등학교 3학년을 조사한 결과 전교생 67명 중 22명이 난독 증상을 보였다. 이 중 증상이 심한 3명은 모두 다문화가정 자녀였다.

센터 측은 다문화가정 학생의 경우 실제로는 난독증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한글 기초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 읽고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센터 소장인 양민화 국민대 교수(교육학)는 “다문화가정 엄마들은 아이들이 자신보다 한국어를 잘하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학생들은 초등학교 1, 2학년 때 교육만 잘해줘도 난독증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교육당국을 중심으로 난독증 학생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지만 교육부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양 교수는 “학교에서 쓰기·읽기 교육을 충실하게 하지 않고 숙제로 대신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래 놓고 학생이 잘 못하면 학부모에게 ‘한글 교육도 안 시키고 뭐 하셨느냐’는 식으로 평가만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난독증 학생 전수조사는 물리적으로 쉽지 않아 일선 학교에서 체크리스트를 적극 활용하도록 하겠다”며 “지역별 학습종합클리닉센터나 특수교육지원센터를 통해 난독증 학생들을 지원하고 ‘난독증 위험의 경계선 지능(지적장애는 아니지만 평균 지능보다 낮은) 학생 지원 방안’ 연구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박진영 기자